화려한 선글라스 너머 세상의 희망과 욕망을 비추다

입력 2020-06-03 17:52   수정 2020-06-04 03:09


붉은색 립스틱을 진하게 바른 입술과 복스럽게 생긴 코. 이목구비(耳目口鼻) 가운데 나머지는 가려져 있다. 선글라스 같은 커다란 안경이 얼굴의 절반 이상을 가렸고, 커다란 머리에는 화려한 보석들로 치장된 금관을 썼다. 선글라스 한쪽에는 신화에 나오는 듯한 여인상이 그려져 있고, 다른 쪽엔 보석과 장신구들로 빼곡히 채웠다. 보석과 장신구들은 선글라스 주변과 귀에서 시작해 좌우로 번져나간다. 보는 것, 듣는 것으로부터 욕망이 시작된다는 걸 암시하듯이….

서울 자하문로 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김지희 작가(36)의 개인전 ‘찬란한 소멸의 랩소디’에 전시된 신작 ‘실드 스마일(Sealed Smile)’이다. 전통적인 장지(壯紙)에 동양화의 채색 기법으로 그린 가로 390㎝, 세로 193㎝의 대작이다. 5개월에 걸쳐 완성한 작품은 세 폭으로 구성돼 있다. 선글라스를 낀 여인을 중심에 두고 좌우에 호랑이, 물고기, 독수리, 장미, 나비, 코끼리, 새 등을 그려 넣었다. 화면 가득히 채운 장신구들이 도대체 몇 개나 될까 궁금해진다.

이화여대에서 한국화와 동양화, 미술사를 전공한 작가는 욕망과 존재의 문제에 천착하며 2008년부터 여인의 얼굴을 소재로 한 실드 스마일 시리즈를 발표해왔다. 이들 작품에서 여인은 화려하게 치장한 채 살짝 미소를 띠고 있지만 실제로는 행복한 표정이 아니다. “웃고 있어도 웃는 게 아니야”라고 말하듯이.

커다란 선글라스는 욕망을 감추는 가림막이자 세상을 보는 창이다. 왕관과 보석, 장신구 등 화려한 도상들은 욕망의 상징이다. 선글라스에 비친 도상들은 결국 세상의 욕망이자 자신의 욕망인 셈이다.

작가는 그래서 마냥 욕망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은 안전장치를 하나 마련해뒀다. 예쁜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치아교정기다. 비틀린 이를 바로잡는 교정기는 우리가 지켜야 할 사회적 기준을 뜻한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선글라스에 써놓은 ‘Be classy’(품위 있게 행동하라), ‘Amor’(사랑), ‘LA DOLCE VITA’(근심걱정 없는 삶), ‘Good things are coming’(좋은 일이 오고 있어) 등의 문구로 희망을 북돋우기도 한다.

오는 20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에 김 작가는 다양한 크기와 표현의 실드 스마일 시리즈 40여 점을 걸었다. 전시 제목의 ‘찬란한 소멸’은 유한한 존재여서 허무한 것이 아니라 삶을 추동하는 희망과 욕망의 모든 순간이 찬란하다는 뜻. 이를 한 편의 랩소디처럼 작품을 표현했다는 의미다.

표미선 표갤러리 대표는 “김 작가의 신작에 등장한 코끼리, 용, 기린 등의 기복적인 도상에는 우리가 염원하는 욕망과 희망이 깃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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